
자유_꿈을 꾸다
지우개의 탭댄스
하늘이 커다란 지우개를 들고
내 삶의 낙서 위로 탭댄스를 춘다
쓱싹, 슥-싹
해묵은 빚도, 눅눅한 슬픔도
먼지처럼 탈탈 날려버리네
지워진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
바람이 통하니 마음도 팔랑
새 그림 그리라고 찍어준 점
마침표인 줄 알았는데 쉼표였나
이제 내 붓끝은 깃털보다 가벼워
새하얀 여백 위로
자유라는 리듬을 듬뿍 그려 넣는다

새 아침
0g의 아침
뽀드득 소리 나는 아침을 마주합니다
이제 내 마음의 무게는 0g.
아들의 무거운 등 뒤로 날개를 그려주고
출근하는 남편의 빈 손바닥엔
작은 쉼표 하나 쥐여 보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따로 있나요?
엔딩 크레딧 너머
‘자유’라는 얇은 빛을 입은 나인걸요
무거웠던 어제는 휴지통에 ‘삭제’
오늘은 빛의 속도로 행복을 ‘업로드’ 합니다
지불 완료된 하루
안녕하세요,
어느덧 우리가 마음을 나눈 지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전에만 아주 길게 빛이 들어 오는 창가에서
그 빛을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살다 보니 인생은 덧칠하는 유화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두운 그림자 위에 더 짙은 색을 올리고
미안함 위에 고집을 덧입히며
그렇게 캔버스가 무거워지는 것이 삶인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 마음의 도화지는 해진 옷처럼 너덜거리고
아들의 푸른 꿈을 덮어버린 나의 무채색 손길과
가장(家長)이라는 가시관을 쓴 남편의 굽은 등이
너무 아픈 명암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늘에서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내 삶의 ‘지불 완료’ 안 된 근심들을
슈우욱- 빨아들였습니다.
서류 한 장이 마법의 양탄자가 될 줄이야!
비워진 캔버스가 주는 선물
저는 오랫동안 저를 짓눌러왔던 무거운 외투 한 벌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 옷은 너무 무겁고 솔기가 터져 있어서,
그것을 입고서는 도저히 붓을 자유롭게 놀릴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그 무거운 짐이 덜어지고 나니,
비로소 제 앞에 아주 깨끗하고 하얀 캔버스가 놓인 기분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가득 채워야 인생이 풍요롭다고 믿지만,
신앙의 눈으로 본 세상은 조금 달랐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들리는 세미한 음성이 있더군요.
“이제 자유해도 좋다”라는 그 짧은 속삭임이,
오늘 제 마음의 자리에 따스한 온기로 남았습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춤추는 이들에게
요즘 영화를 자주 봅니다.
스크린 속 주인공들의 삶을 보며 제가 가보지 못한 길을 대리 경험하곤 하죠.
어떤 영화는 너무 치열해서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어떤 영화는 우리네 삶과 닮아 있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특히 본래의 빛깔을 잠시 접어두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머뭅니다.
제 곁에도 그런 이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눈부신 재능을 가졌음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탱하기 위해
투박한 작업복을 입고 묵묵히 길을 걷는 아들,
그리고 소명과 생계의 기로에서 매일 거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남편.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미안함이라는 물감이 마음을 검게 물들이기도 하지만,
이내 기도하게 됩니다.
이 ‘맞지 않는 옷’ 또한 결국은 사랑이라는 가장 고귀한 옷감으로 지어진 것임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수고로운 땀방울 하나하나를
가장 아름다운 색채로 기억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선의 확장, 그리고 자유
세상이 시끄럽고 각자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는 요즘입니다.
저 역시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며
고민이 깊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날 선 주장보다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의 표정’에 더 집중해보려 합니다.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큼이나 그 주변의 ‘여백’이듯,
우리의 생각도 서로의 다름을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 그림과 글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자유’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방종이 아니라,
삶의 어떤 폭풍우 속에서도 내면의 평안을 잃지 않는 단단한 자유입니다.
오늘, 저는 다시 붓을 듭니다.
이제 막 배달된 깨끗한 종이 위에,
미안함보다는 감사함을,
무거움보다는 경쾌한 빛의 선들을 그려 넣으려 합니다.
여러분의 한 주도
누군가 지워준 마음의 짐 덕분에
한결 가벼워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026년 5월,
비워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붓시인 올림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Untitled
〈자유_꿈을 꾸다〉 | 〈지우개의 탭댄스〉
〈새 아침〉 | 〈0g의 아침〉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어떤 제한이나 구속 없이 자유롭게 보내는 나의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하며 말입니다. 누구든지 각자가 원하는 자유의 모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작가는 작품을 표현할 때 자유를 잘 활용합니다. 재료에서의 자유, 주제에서의 자유, 시선에서의 자유. 유일하게 자유롭지 못한 것이 있다면 캔버스의 크기와 재료의 양일 것입니다. 언젠가 더 자유가 주어졌을 때, 어떤 그림이 탄생할지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작품의 해석에 대해서도 항상 자유를 외칩니다. 이는 꼭 한붓시인 작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전시를 보시다가 ‘untitled'(무제) 라는 제목의 작품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작가도 역시 제목으로 인해 작품에 프레임이 씌워져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목은 작품의 이해도 돕지만, 그 제목으로 인해 구속받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끔씩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면 제 나름대로 제목을 지어보곤 합니다. 작가의 의중과 제목과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붙여보며 스토리를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감상법도 제법 작품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두 작품도 자유롭게 상상해보며 감상을 해봅니다.
첫번째 작품은 저라면 “연기의 춤”을 붙여줍니다. 마치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그 연기가 춤을 추는 판타지가 연상이 됩니다. 두 번째 작품에선 “이국의 숲”이라고 붙여봅니다. 예전 네덜란드를 갔을 때 방문했던 국립공원의 호수가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이렇게 나름의 제목을 붙이고 다시 그림을 보고 또 작가가 써 놓은 글을 보며 더 크게 상상을 키워갑니다. 여러분들은 작품을 보며 어떤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