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마음이 외출 중
아침에 마음을 찾았는데
신발만 남기고 나가 있었다
생각은 종종
너무 멀리 앞서 가서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삶은 원래
대충 다녀온 사람에게
가끔 더 다정하니까
저녁이 되면
마음은 돌아올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_한붓시인입니다.
구독자 여러분. 언제나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어 제 글과 그림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여러분께, 오늘은 조금 특별한 고백을 건네려고 합니다.
“한붓시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문득 제 안에서 흘러나온 이 질문에서 오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저라는 사람의 무늬를 투명하게 보여드리고, 앞으로 제가 걸어갈 예술의 길을 조심스럽게 소개해 보려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_감정을 번역하는 사람, ‘감정 번역가’입니다.
나에게 그림은 표현 이전의 행위입니다. 먼저 나 자신 안에 쌓인 잔여물들을 걷어내기 위한 정화의 과정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캔버스는 결과물이 아니라, 통과 지점입니다. 그 위를 지나며 나는 불안과 긴장, 관계 속에서 생긴 미세한 균열들을 덜어냅니다.
그래서 나의 그림은 완성된 이미지라기보다, 지나간 감정의 흔적이자 통과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그중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이름도 얻지 못한 채 가슴속에 묻힐까요? 내면의 깊은 아픔, 차마 꺼내놓지 못한 상처,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까지….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웅크려 있는 숨은 감정들을 찾아내어 해석하고, 그것을 다른 차원의 언어로 옮기는 사람, 곧 ‘감정 번역가’입니다.
때로는 단 한 번의 붓질로 이어지는 크로키(한붓 그리기)로 날것의 감정을 붙잡고, 때로는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색채의 추상으로 말로 다 못할 마음을 펼쳐냅니다. 기법이나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예술이란, 오직 내면의 진실을 끄집어내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방향이 생깁니다. 나의 예술이 지향하는 나침반의 바늘은 오직 ‘자유’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단순히 제약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움직임의 궤적입니다.
제도라는 벽 앞에서 _‘날개’를 달아주고 싶습니다.
나 한붓시인의 길이 독자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세상이 정해놓은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기성의 규칙, 평가의 기준, 기존 예술계가 만들어 놓은 촘촘한 제도권의 그물망에 얽매이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거친 황무지에 자신만의 발자국을 깊게 새기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독자적 노선의 예술가입니다. 감정이 요구하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존의 틀과 어긋난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불완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한 것이 있습니다. 가공되지 않은 진심입니다. 똑같이 찍어내는 듯한 가공된 그림보다는, 다듬어지지 않았더라도 살아 숨 쉬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재료와 기법을 사랑합니다.
현실의 우리는 어쩌면, 모두 세상의 시스템과 제도라는 단단한 틀에 갇혀 살아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창조해 내는 그림과 글 안에서만큼은 완벽한 ‘자유’를 꿈꿉니다.
세상의 기준에 저를 맞추기보다, 저만의 표현 방식을 치열하게 연구하며 저만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세상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제 예술만큼은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도록 눈부신 날개를 달아주는 것. 그것이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결국 한붓시인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통과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 내놓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감정을 이미지와 언어로 번역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사람.
한붓시인은 세상을 향해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자신 안에서 시작된 작은 진동을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 바로 한붓시인의 정체성입니다.
이 자유로운 여정에 _기꺼이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독창적인 길을 걷는다는 것은 때로 깊은 고독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저는 외롭지 않습니다. 제 서툰 고백과 날것의 언어에 귀 기울여 주시는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의 이 고집스러운 날갯짓을 이해해 주고, 제 그림 속 숨은 슬픔과 기쁨에 공감하며, 이 자유로운 여정을 함께 걸어갈 ‘그 누군가’가 바로 여러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예술로, 앞으로도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겠습니다. 제가 멈추지 않고 저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제 작은 날갯짓에 따뜻한 응원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시겠습니까?
제 곁에 머물러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자유를 꿈꾸는 감정 번역가, 한붓시인 드림.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
나는 어떤 사람인가
가슴속 깊은 수풀에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이름 없는 빛
그 서글픈 진동을 가만히 건져 올려
빛의 언어로 옷을 입혀주는 존재
하얀 캔버스 위에 마음의 응어리
그곳에 털어내며 투명한 정화를 거듭한다
세상의 촘촘한 그물망이 답답해
날것의 진심으로 숨 쉬고 싶어서
울타리 바깥 거친 황무지를 밟는다
때로 시리고 고독하지만
내 서툰 손짓에 주파수를 맞추고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당신이 있기에
하늘로 향하는 눈부신 활주로를 만든다
내 안의 작은 떨림을 나침반 삼아
투명한 마음을 눈앞에 펼쳐내며
오직 완벽한 해방을 향해
지치지 않는 날갯짓을 이어간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규칙에서 자유를 찾는 아이러니
〈생각은 종종〉, 〈오늘은 마음이 외출 중〉
〈화려함 속에 감춰진 고독〉,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버린 유튜버가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같이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보고 초심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초심을 잃을 수밖에 없죠. 저는 예전에 있던 곳보다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으니까요.”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하다보면 알게 됩니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오만가지 규칙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따졌다가는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 위치와 경험에 따라 각자 다른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선 안에서만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 깨달은 것이 있다면 누군가의 조언은 참고 정도만 할 수 있지, 그것이 어떤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넓게 보고 있는 사람의 말은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저에게 없는 그 부분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람의 말도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모든 말은 ‘나’라는 필터로 인해 보고 듣고 싶은 것만 흡수됩니다.
그렇기에 시각이 고해상도인 사람일수록 고독합니다. 다양한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창이 너무 많이 열려있기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압도합니다. 평면적 정보가 아닌 입체적 정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선택은 그래서 단순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표현’합니다. 매체를 가리지 않으며, 해석의 자유를 용서합니다.
너무 많은 표현은 때로는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어디로 그 열정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늘어나고 부풀어진 표현은 어느새 세상의 규칙이라고 하는 어떤 영역에 도달합니다. 더이상 늘려나갈 공간이 없는 상태죠. 그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규칙을 깨고 자유함을 얻으리라 감히 예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