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독자라고? 에이, 설마… 하다가 무릎 꿇은 이야기
“중독? 그건 나랑 아무 상관 없는 먼 나라 이야기지.”
나는 그동안 중독이라고 하면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떠올렸다. 뉴스에서 보던 이야기, 누군가의 무너진 삶,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극단적인 단어들. 그건 늘 ‘다른 사람의 세계’였다.
그런데 최근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중독 의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애나 렘키(Anna Lembke) 박사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중독에 대한 내 생각이 보기 좋게 깨졌다. 중독은 특별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집어 들까.
분명히 피곤한데도 끝없이 화면을 넘기고 있을까.
왜 해야 할 일이 있는데도 굳이 정치 뉴스 속으로 다이빙을 할까.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선택, 잠깐의 위로가 되는 행동,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반복되는 습관들.
“어? 이거 딱 내 얘긴데?” — 무릎을 탁 치는 우리의 일상
어젯밤 내 모습을 떠올려 보자. 분명히 눈은 침침하고 온몸이 피곤해 죽겠는데, 왜 내 손가락은 영혼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위로 위로 올리고 있었을까? ‘딱 10분만 보고 자야지’ 했던 유튜브 숏츠는 정신을 차려보니 1시간이 지나 있고. 머리로는 ‘얼른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면서도 손은 어느새 정치 뉴스를 클릭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술과 마약을 안 할 뿐, ‘일상이라는 이름의 아주 세련된 중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뇌의 시소법칙 — 쾌락이 다녀간 자리에는 반드시 고통의 무게추가 내려앉는다.
우리 뇌에는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흔히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지만, 정확히는 “야, 그거 재밌다! 얼른 더 해!” 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부여 호르몬이다.
그런데 애나 렘키 박사는 아주 흥미롭고도 잔인한 법칙 하나를 설명한다. 우리 뇌 속에서 ‘쾌락’과 ‘고통’은 같은 시소(저울) 위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영상을 한참 보고 난 뒤, 스마트폰을 끌 때 밀려오는 묘한 공허함, 헛헛함, 그리고 알 수 없는 우울감. 그게 바로 뇌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불하는 ‘쾌락의 대가(고통)’였던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이 자극이 반복되면 우리 뇌의 저울이 고장나 버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재밌는 영상, 더 자극적인 콘텐츠, 더 강한 즐거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끝에는 즐거움 대신 무기력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중독은 이렇게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안 하면 더 괴로운 상태”
이 기준으로 보면 중독은 특정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결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 “심심할 권리”를 처방합니다.
영상에서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덜 하는 것’, 즉 ‘지루함과 친해지는 것’이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줄이고, 무의식적인 반복을 멈추고, 조금의 불편함을 버티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쉽지 않다. 지루하고, 공허하고, 괜히 불안해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뇌가 다시 균형을 찾는다.
흥미로운 건, 이 모든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운동하라는 말, 잘 자라는 말, 스마트폰 줄이라는 말.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이유가 ‘도파민’이라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았을 뿐이다.
내 삶의 주도권 되찾기
마약이나 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중독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부터 찾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일 달고 짠 음식을 찾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작은 중독 상태에 빠져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한 번쯤 나도 모르게 내 도파민 저울을 망가뜨리고 있는 습관은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 의도적으로 자극을 멀리하고 심심함을 견뎌보는 시간, 이른바 ‘도파민 디톡스’. 우리 뇌의 균형을 되찾아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창밖의 바람 소리를 듣거나 산책을 하거나 가만히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 조용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친 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우아한 휴식이 될 것이다.
오늘의 뉴스레터에 영감을 준 영상이 궁금하다면?
Dopamine Expert: Doing This Once A Day Fixes Your Dopamine! (The Diary Of A CEO 채널)
영상을 통해 쾌락과 고통의 뇌과학 원리를 더 깊이 있게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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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도파민 미식가
파란 불빛이 새벽의 눈꺼풀을 핥고 지나가면
내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유리창을 긁어대는
굶주린 짐승이 된다
슥, 슥.
매끄러운 액정 위로
나는 그 얄팍한 단맛을 핥는다
설탕보다 진하고
비타민보다 즉각적인 0.1초의 축제
알고리즘이라는 주방장은
오늘도 내 입맛에 꼭 맞는
자극적인 요리들을 뷔페식으로 차려낸다
나는 이 식탁의 주인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애완동물이 되어
화면이 뱉어내는 붉은 하트 알약에
게걸스레 중독되어 간다

중독된 방구석 정치가
연예인의 핑크빛 열애설에는 콧방귀를 뀌고
화려한 아이돌의 춤사위엔 눈길 한 번 안 주던 내가
어느 날부터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백성의 ‘우국충정’
나는 이 나라의 외교와 경제, 법조계를 종횡무진한다
빨갛고 파란 썸네일이 눈앞에서 깃발을 흔들면
내 손가락은 정의의 사도처럼 웅장하게 클릭을 누른다
알고리즘이 차려놓은 방구석 청사에서
난 밤새 퇴근하지 못하는 중독 정치가
나라 걱정에 가슴이 웅장해졌다가도
꺼진 화면 위로 비친 부스스한 민낯을 마주하고는
피식 웃고 만다
아, 대한민국은 내가 어떻게든 지킬 테니
제발 누군가 내 손가락 좀 여기서 꺼내 줘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즐거움 뒤엔 언제나 슬픔이 도사린다
〈요즘 사람들〉, 〈도파민 미식가〉
〈제발〉, 〈중독된 방구석 정치가〉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땐 모든 신경이 감각하기를 멈춥니다. 오직 손가락과 눈만이 반짝거리죠. 그러다가 ‘좀 지나친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엔 이미 숨이 막혀 옵니다.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요.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뇌는 왜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원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 기능을 잘 이용하면 엄청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면 하염없이 구덩이 속으로 빠져버리는 이유. 양날의 검과 같은 뇌는 우리가 어느 방향을 선택하든 과속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막대하게 성공한 사람도 그 공허함 속에서 버티지를 못하고, 끔찍한 중독의 늪에 빠진 사람도 삶이 망가져 슬퍼합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평범한 것 같은 사람조차 무엇인가에 빠져 삽니다. 우리 모두 그렇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저는 차라리 결과가 아닌 과정을 바꿔야겠단 생각합니다.
중독 자체가 필연이라면 중독의 대상을 바꾸는 것으로 이 슬픔과 공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인가를 소비하는 것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차라리 제작하는 것에 중독되겠습니다. 무엇인가 몸을 망치는 것에 중독되었다면 차라리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중독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중독의 메커니즘이 똑같다면 말이죠. 참 재밌게도 같은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단어를 달리 씁니다. 안 좋은 것에 빠진 사람에겐 ‘중독’을, 좋은 것에 빠진 사람에겐 ‘몰두’라고 말이죠.
여러분들은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나요? 어떤 것에 몰두하길 원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