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의 경계에서 도파민을 마주하다
ㅡ <참교육>과 <김부장>이 던진 질문
요즘 글로벌 차트에서 1, 2위를 다툰다는 한국 드라마 <참교육>은 단숨에 정주행했고, <김부장>은 아직 달리는 중이라 다음 회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다. 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밤, 이 작품들은 혀끝에 닿는 탄산처럼 톡 쏘는 쾌감을 남겼다. 그러나 그 청량함이 목을 타고 내려간 뒤, 이상하게도 가슴 어딘가에 미처 삼키지 못한 질문 하나가 걸려 남는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잔혹할 정도로 지독한 법 바깥의 징벌에 열광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저 흔한 액션 극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빌런들이 사정없이 무너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깊은 안도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교권을 무너뜨리고 아이들의 영혼을 벼랑 끝으로 등 떠밀던 이들을 거침없이 무릎 꿇리는 <참교육>의 나화진. 그리고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국경도, 법도, 체면도 초월해 도시 전체를 헤집는 <김부장>의 처절한 사투. 이 두 세계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직관적이고 가혹하지만, 동시에 지독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현실의 무력감이 빚어낸 달콤한 환상
이 드라마들이 건드린 것은 단순한 쾌감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는 오래된 피로와 체념이 깔려 있었다. 우리는 뉴스를 볼 때마다 분통을 터뜨리곤 한다. 촉법소년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잔혹한 범죄, 공권력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괴롭힘들. 그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기다리는 정의’보다 ‘즉각적인 응징’을 상상하게 된다. 이 작품들은 바로 그 상상을 실현한다. 그리고 아주 명쾌한 방식으로, 악을 정리해버린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직접 악을 처단하는 영웅의 등장은 늘 짜릿하다. 이것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까지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답답함과 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이 비단 우리 사회만의 고질병이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국경을 넘어 모든 현대인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사이다’에 대한 갈증이 여기서 터져 나온 셈이다.
원초적인 사랑, ‘가족’이라는 가장 강한 감정
특히 <김부장>을 보면서는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낮에는 상사 눈치나 보는 평범한 중년의 부장님이, 알고 보니 국가 기밀급 최종 병기였다. 그가 지켜온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 건, 학교라는 작은 세계에서 권력을 등에 업은 폭력은 너무 쉽게 방향을 정했고, 딸은 그 한가운데에 놓였다. 그리고 오직 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봉인을 해제한다는 설정은 어찌 보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가장 강력하게 작동한다.
‘자식.’
이 단어는 언제나 설명을 건너뛴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선택. 그 선택에는 논리도, 설득도 필요 없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두려움과 동시에 어떤 숭고함을 보았다. 사회가 약속한 안전망이 나를 지켜주지 못할 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결국 본능적인 ‘핏줄’이라는 메시지. 어쩌면 이 차갑고 고독한 각자도생의 시대에, 끝까지 나를 위해 싸워줄 단 한 사람을 꿈꾸게 된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 흔들리는 이유는, “도덕적 딜레마를 잠시 내려놓고 본능에 몸을 맡겼을 때 찾아오는 카타르시스. 하지만 이 톡 쏘는 탄산 같은 쾌감의 끝맛이 이토록 씁쓸한 이유는 뭘까?
카타르시스를 즐기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드라마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시원함과 함께 찾아온 묘한 경각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그런 방식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장르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도가 그만큼 차가워졌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사이다는 목을 축여줄 뿐, 결코 밥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이 사이다의 도파민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정의로운 사회 시스템이 아닐까?
그래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 세상에서, 어쩌면 이 드라마들이 진짜로 던진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정의보다 통쾌함을 먼저 찾게 되었을까?’

도파민의 정의는 복수일까
도파민의 정의는 복수일까
어둠이 내린 방
픽셀로 빚어낸 나의 대리인은
건방진 저 악당들을 수건 개듯 접어주니
내 심장엔 톡 쏘는 코발트블루가
짜릿하게 번져간다
왜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정의가
화면 속에서는 이렇게 쉽게 완성될까
도파민은 정의를 닮았고
정의는 때때로 복수를 닮아 있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도
그 잔상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끝내 지워지지 않아서..

디지털 영웅
디지털 영웅
세상을 부수고 싶을 때
▶ Play
리모컨은 가장 완벽한 기폭장치
퍼억~
화면 속에서 악당이 날아갈 때
내 심장은 탄산처럼 팡팡 터진다
아, 달콤한 쾌감, 찰나의 도파민
■ Stop
빛은 죽고, 불 꺼진 방
여전히 다음 폭발을 기다린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발끝엔 본심이 있다
〈도파민의 정의는 복수일까〉
〈디지털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