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청춘
입술에는 푸른 꿈을 바르고
눈꺼풀에는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칠했다
세월이란 것이
그토록 부지런한 줄은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은 아직
청춘의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만 기다린다
꿈은 여전히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한밤중에도 나를 깨운다
스무 살의 내가
옷자락에 세월을 주렁주렁 달고
뒤뚱 뒤뚱
이런!
그러니 나이를 묻거든
마음의 주민등록번호는
아직 비공개라고 하자

출발선에서
태클 걸지 마
부드러운 햇살과 나란히 걷는데
투명한 유리창 속에서 함께 걷는
낯선 한 사람을 보았다
걸음걸이는 뒤뚱거리는 펭귄을 닮아
인생이라는 빙판을 탐험한다
마음은 청춘의 들판을 달리는데
길가 통유리창이 태클을 걸어온다
환상이 연기처럼 날아가던 순간
백조면 어떻고 펭귄이면 어떠하리
알맹이는 여전히 눈부신 청춘인 것을
거울마저 다정한 거짓말을 건네며
나를 아직 젊다 다독여 준다
유리창 너머, 낯선 펭귄과의 기묘한 만남
매주 여러분에게 건넬 뉴스레터를 준비하며 모니터 앞에 앉을 때면,
늘 생각의 실타래가 길어지곤 합니다.
‘어떤 근사한 주제를 담아야 다양한 연령대의 구독자분들 마음에 들까?’
하지만 결국엔 늘 연필을 내려놓듯 생각을 접습니다.
그저 내가 조용히 느낀 것들,
내가 살아온 지극히 사소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놓자.
그것만큼 진실한 언어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전히 업데이트 중인 60대를 살아가는 여성입니다.
하지만 참 이상합니다.
겉모습은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며 제법 단단해졌는데,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스무 살 무렵의 순진하고 파릇한 내가
눈을 반짝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내 안의 시간은 그 싱그러운 봄날에 고장 나 버린 모양입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은 그 파릇파릇했던 시절에 멈추어 있는 것만 같습니다.
어느 정갈한 저녁이었습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남편과 마주 앉았습니다.
문득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자글자글해진 눈가, 듬성해진 정수리,
그리고 국물을 들이키는 조금은 둔해진 손짓.
‘우리 남편이 언제 이렇게 늙었나…….’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아릿하면서도 세월이 야속했습니다.
그러곤 속으로 슬그머니 철없는 착각 하나를 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당신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지.’
그렇게 슬그머니 혼자만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동네 산책을 나섰습니다.
가슴을 당당히 펴고, 발걸음은 우아하게,
마음속 스무 살 청춘의 리듬에 맞춰 기분 좋게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얼마전 완공이 끝난 상가의 커다란 통유리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슬쩍 곁눈질로 바라본 유리창 속에는,
놀랍게도 펭귄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얼음 위를 위태롭게 저벅저벅 걸어가는 한 마리의 펭귄이었습니다.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운 새인데,
현실의 거울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한
뒤뚱거리며 걷는 펭귄 한 마리를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을 너무나도 정직하게 비추는 그 유리창은,
내 마음속 스무 살의 환상을 단 한 순간에 깨트려 버렸습니다.
남편을 보며 ‘내가 더 젊지’라고 만끽했던 소소한 우월감도
통유리창의 솔직함 앞에 사정없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처음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뒤뚱거리는 내 발걸음을 가만히 느껴보며 깨달았습니다.
유리창이 보여준 그 뒤뚱거림은 결코 부끄러운 퇴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자갈밭과 빙판길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건너오기 위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내 몸이 스스로 터득한
가장 솔직하고 숙련된 균형잡기였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평생 거울을 보며 살았는데
왜 그날 유리창 속의 내가 그렇게 낯설었을까요.
그날 나는 깨달았습니다.
유리창은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걷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 사이의 간격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비록 우아한 사슴의 걸음은 아닐지라도,
남편과 함께 늙어가는 이 계절을
가장 단단하게 지탱해 준 고마운 발걸음이었던 셈입니다.
겉모습이 조금 뒤뚱거리면 어떻습니까.
남들 눈에는 펭귄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뒤뚱거리는 펭귄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불꽃 같은 청춘이 뜨겁게 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젊은 독자분에게는 언젠가 찾아올 세월이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유쾌한 안도를.
저와 비슷한 계절을 지나고 계신 독자분들에게는
살아낸 세월에 대한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무한 동력
〈20대〉, 〈청춘〉
〈출발선에서〉, 〈태클 걸지 마〉
20대는 누구에게나 ‘꿈꾸는 시기’입니다. 다른 연령층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사회적 결과를 낸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두들 가능성에 베팅하고, 새로운 미래가 올 것이라 상상하며 기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두 작품을 본다면 꽤 재밌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여백이 아주 많습니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 같기도 하고, 작품 완성 단계 이전의 스케치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하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보면, 두 작품 모두 깊고 단단합니다. 즉, 여기서의 여백에는 의도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음은 젊지만, 실력은 깊은 작가만이 낼 수 있는 맛입니다. 20대의 개성과 발랄함은 가져 가면서, 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있는 가능성까지 같이 보여줍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기에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빈 공간을 보면 채우고 싶어 하고, 멀리 있는 공간을 보면 이동하고 싶어 합니다.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가지고 싶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루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만족을 꿈꾸는 영원한 불만족입니다. 이 끝없는 굴레를 일찍이 깨닫지 못한다면, 마지막 날까지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지옥을 맛보게 됩니다.
반대로 그런 사실을 오히려 잘 알고 마음의 동력을 삼아 더 힘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작가의 두 작품 <20대(청춘)>과 <출발선에서(태클 걸지 마)>에서 그러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늙지 않는 마음. 그것은 어리광도 아니고 설익음도 아닙니다. 지속적 창작을 위한 무한 동력이 됩니다. 사람은 몸이 늙었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늙었을 때 죽는다고 합니다. 몸은 꺾여도 어떻게든 일어설 수 있지만, 마음이 꺾이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죠.
비록 펭귄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발걸음을 오늘도 내딛는 작가의 마음속에서 저 또한 새로운 동력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