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뒤집히던 그 순간
_ 뒤집어 보니, 사랑이었다
추석이다.
오래전 그려놓은 한 장의 그림 앞에서 마음이 멈췄다.
달이 차오르면
사람들은 가족을 생각하고,
고향을 생각하고,
오래전 떠나온 시간을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올해
조금 다른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어릴 적의 나.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모든 것이 재미있었던 나.
친구 하나만 있으면 하루가 꽉 찼던 나.
넘어지고도 웃었고,
겁이 나면서도 다시 해보았고,
누군가의 등을 빌려
잠깐 하늘까지 올라갔던 나.
어릴 적 골목길에는
거창한 장난감이 필요 없었다.
“야, 이번엔 내 차례다! 제대로 들어라!”
내 몸은 단숨에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시야가 180도 뒤집히며
파란 가을 하늘이 발밑으로 들어오고,
붕 떠오른 몸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그 짜릿한 스릴!
친구의 등이
그때 우리에게는 작은 놀이공원이었고,
허공에 뜬 몇 초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모험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참 용감했고 또 단단했다.
누군가 나를 받쳐주고 있다는 신뢰 하나만으로
망설임 없이 하늘 향해 몸을 던졌고,
기꺼이 서로의 무거움을 짊어지며 함께 웃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우리가 찾아가려고 애쓰지 않아도,
어느 날 문득
먼지 쌓인 서랍 속 그림 한 장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다.
“너, 그때 참 재미있었어.”
그러면 우리는 잠시 웃는다.
아, 내 어린 시절은 사라진 것이 아니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어린 시절에는
어떤 ‘뒤집히는 순간’과
‘든든한 등’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추석은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는다.
이제는 찾아가 투정 부릴 부모님도 모두 천국에 계시고,
멀리 부산,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님은
명절의 날짜조차 아련해진 기억 속으로 보내고 계신다.
문득 그리움이 밀려오지만,
가만히 돌이켜보니 슬픔보다는
감사함이 먼저 마음에 차오른다.
어린 시절 친구와 나누었던 그 뜨겁고 묵직했던 등판처럼,
친정 부모님과 시아버지 역시
당신들의 단단한 등으로 우리를 평생 떠받쳐 주셨다.
당신들의 허리가 굽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 등 위에서 세상이 넓다며
마음껏 세상을 올려다보며 자란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아낸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거친 세상을 털고 일어나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맞이한 이번 추석은
우리를 단단하게 업어 키워준
그 커다란 사랑을 마음껏 추억하고
보름달처럼 마음 가득 고마움을 채워본다.

어릴적에
하늘을 밟고 놀던 아이들
“제대로 들어라!”
허공에 붕 뜬 찰나의 순간마다
발밑으로 가을 하늘이 쿵 하고 쏟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놀이기구
꺄르르 꺄르르
중력을 비웃으며 터지는 웃음판
“어서 와 밥 먹자!”
등 뒤로 날아든 엄마의 초음파 경고음
내일 또 만나자 약속 하고
밥 냄새를 따라 털레털레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아이들

단단한 등
단단한 등
한 아이를 업고
또 한 아이를 업고
하루를 등에 지고
내일을 등에 지고
거칠고 무거운 세상의 앞자리는
언제나 당신의 몫이었습니다
세월이 남긴 훈장
가장 단단한 사랑의 형태
부모님의 등 위에서
우리는
나의 사랑을 배웠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두 개의 등
〈어릴적에〉, 〈하늘을 밟고 놀던 아이들〉
〈단단한 등〉
어릴 때는 친구와 등을 맞대고 놀았지만, 이제는 그 등으로 누군가를 업습니다. 그제야 등이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신뢰, 책임, 안정, 희생, 사랑. 사람의 등에는 많은 것들이 적혀 있습니다. 내 등에 무엇이 적혀 있는 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기 시작합니다. 바로 앞서 걷던 사람들의 등을 보면서 말이죠.
부드럽고 짙게 그어진 붓 자국 사이로 기억 속 숨어있던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유연하지만 강합니다. 그 특색을 이용해 작가는 사람을 그려냅니다. 한 획 두 획 그을 때마다 작가의 추억이 사람의 모습을 빌려 태어납니다. 그 속엔 즐거움이 있고, 신뢰가 있고, 또 감사함이 있습니다.
작품의 선을 눈으로 따라가 봅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바로 ‘등’입니다. 두 등을 맞대고 놀고 있는 사람들과 등이 휜 채 걷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같은 등이지만 역할이 다릅니다. 무게를 잊기 위해 맞대었던 등과 무게를 견디기 위해 내어준 등입니다.
작품과 시를 보며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 친구와 ‘등’을 맞대고 재밌게 놀던 때. 그때를 지나면 이제는 혼자 ‘등’을 펴고 나를 세워야 하는 때가 옵니다. 그러다가 내 ‘등’에 다른 사람이 기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업고 있다 보면 그제야 나를 업고 있던 ‘등’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죠. 그 모든 ‘등’의 여정을 이번 두 작품 속에서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