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천천히 움직였다. 활주로 위에 멈춰 섰을 때였다. 그리고 숨이 멎었다. 하늘이 타고 있었다. 정말로, 타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불길을 머금은 채 번져가고 있었다. 그 색이 단순한 노을이 아니었다. 주홍도 아니고, 붉은색도 아니고, 불꽃 같기도 하고, 녹아내리는 금속 같기도 했다.
‘이건 물감으로 못 만든다.’ 어떤 색을 섞어도, 이 온도는 나오지 않는다. 하늘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였고, 나는 그 앞에 선 아주 작은 관람자였다.
기류 악화로 공항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시계를 올려다보던 몇 시간의 지루함이 순식간에 눈녹듯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일주일 내내 맑던 하늘이 떠나는 날 비와 바람을 뿌리더니, 마지막 순간에는 “꼭 다시 오라”며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작별 선물을 건네는 듯 했다. 화가인 나의 눈에 그 노을은 평생 잊히지 않을 명작으로 가슴 깊이 새겨졌다.
계획을 비워낸 자리에 물든 뜻밖의 선물들
돌이켜보면 3년 전 그해 10월의 오사카 여행은 시작부터 모든 것이 뜻밖의 선물이었다. 기류 악화나 비바람 같은 통제할 수 없는 불편함 뒤에 예상치 못한 황홀한 노을이 펼쳐졌듯, 엄격한 계획 대신 내려놓은 무계획의 여백 속에서 삶은 비로소 진짜 선물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란 어쩌면 내가 세운 완벽한 의도보다, 생각지 못한 우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 속에서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개인전이었다. 감사하게도 몇 점의 그림이 좋은 컬렉터를 만나 주머니 사정에 숨통이 트였던 때였다. 마지막 휴가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아득하고, 오랜 세월 가정 재정을 챙기느라 스스로에게 박했던 나에게 그 돈은 오랜만의 용기였다.
“엄마, 더 나이 들면 다니기 힘들어요. 결혼 30주년인데 이번에 떠나죠.”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한 아들의 든든한 지원사격이 없었다면 ‘이건 사치 아닌가’ 하는 주부 특유의 망설임을 끝내 털어내지 못했을 터다.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다 가는 유명 관광지 대신, 현지 아파트를 개조한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오사카 현지인처럼 살아보기’라는 대책 없는 무계획 자유 여행에 몸을 실었다.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건 거리의 풍경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든 사람이 바글거리는 도심이든, 바닥에 주저앉아도 될 만큼 깨끗했다. 여행 유튜브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생생한 정갈함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공공장소는 모두의 공간’이라는 교육을 받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고 한다. 즉, 체계적인 청소 시스템 뒤에는 시민들의 높은 의식과 생활 습관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의 눈으로 본 그 거리들은 여백의 미가 잘 살아 있는 깨끗한 도화지 같았다.
골목골목 찾아 들어간 현지인 식당의 음식들은 또 어찌나 내 입에 딱 맞던지. 한국 음식처럼 매콤달콤 강렬한 자극은 없었지만, 슴슴한 듯 혀끝에 닿는 깊은 감칠맛에서 음식을 만드는 이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 그대로 전해졌다.
10월임에도 꽤나 무더웠던 날씨 탓에 시원한 대형 백화점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백화점 내 상설 갤러리 투어는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조명 아래 조용히 숨 쉬는 작품들을 바라보는 동안, 캔버스 너머의 작가와 묵직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감동에 젖어들었다.
물론 모든 순간이 완벽할 순 없었다. 커피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까다로운 혀를 만족시킬 ‘결정적인 한 잔’을 끝내 만나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달려 도착한 작은 도시에서 뜻밖의 환희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타코야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길가의 푸드 트럭에서 김을 피워 올리던 동그란 것 하나를 입에 넣는 순간, “와?” 하는 짧은 탄성이 먼저 튀어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녹아내리는 본토의 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도 가끔 한국에서 타코야끼를 사 먹지만, 그건 그날의 유쾌했던 추억을 사 먹는 것에 가깝다.
그 소도시에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미니밴을 타고, 산속 깊은 료칸으로 향했다. 그 길은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아들이 “료칸은 제대로 된 곳에서 경험해야 한다”며 고심해서 고른 곳이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던 풍경은 부드러운 붓질처럼 마음을 스쳤고, 어느새 도착한 전통 료칸은 고요한 쉼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정갈하게 차려진 가이세키 요리를 즐기며 보낸 시간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의 단골 추억거리다.
사실 나는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건 어쩌면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직접 발을 딛고 만난 사람들은 나의 낡은 편견을 한여름 햇볕 아래의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여버렸다. 식당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서툴지만 따뜻한 한국어로 말을 건네주었다. 곳곳에서 만난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어머, 우리가 한 말 다 알아듣는 거 아니야? 입조심하자!”며 서로 속닥거리는 귀여운 해프닝을 벌였다.
발길 닿는 대로 정처 없이 걸으며 눈에 담았던 오사카의 소박한 골목길, 정갈한 음식의 냄새들. 계획이 없었기에 더 또렷하게 스며든 풍경들은 지금도 붓을 들거나 글을 쓸 때 문득문득 아련한 영감이 되어 찾아온다.
활주로를 타오르게 물들이며 다음을 기약하던 그 붉은 노을처럼, 조만간 다시 배낭을 싸 들고 이름 모를 도시의 골목길을 느긋하게 걸어보고 싶다. 현지인처럼 가볍게, 하지만 깊게 거니는 다음 여행을 마음에 품으며, 나의 다음 여정도 역시 그렇게 멋지게 펼쳐지기로 정해졌다.

너의 세계로
여행을 간 게 아니라, 그림 속에 들어간거다
빛이 벽에 부딪혀 튕기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다
“지금… 색이 움직이고 있어”
다른 사람 눈에는 그냥 햇빛이었을 거다
길을 헤맨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에 빠진” 거다
지도를 보고 가다가
이상하게 더 예쁜 길로 들어가 버리는 거다
“이쪽 아닌데?”
“알아. 근데 이쪽이 더 좋아.”
‘아, 이게 여행이지’
하늘이 무너졌다
일주일 내내 그렇게 맑더니
그것도 그냥 비가 아니라
바람까지 데리고 온 비였다
마치 번지는 수채화 같았다
“끝까지 그림이네…”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공항의 공기는 점점 무거웠다
‘이 여행… 이렇게 끝나는 건가
“탑승 안내 드립니다”
그날 가장 따뜻한 문장이었다
안도의 숨을 한 번 쉬고, 창밖을 봤다
하늘이 타고 있다
‘빛의 기억’이었다
하늘 전체를 캔버스로 쓰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아무 계획 없이,
또 한 번 오라는 빛의 초대장이었다

기분전환
캔버스가 된 여정
세 사람이 함께 맞춘 발걸음
계획 없는 설렘을 풀었다
처음 마주한 낯선 도시
바람이 쓸어놓은 도화지 같다
아무리 붓을 가다듬고 색을 섞어도
결코 채워낼 수 없었던 그 찰나의 온도
폭풍우가 주고 간 선물
내려앉은 황홀함
어떤 물감으로도 담지 못할
금빛 불꽃을 뿜었다
가슴 깊이 새겨진 그날의 붉은 영감은
오늘도 빈 화폭 위로 다음 여정을
조용히 그려낸다
그 붉은 명작이 가슴 깊이 새겨질 때
우리의 작별은 끝이 아닌
‘다음’이라는 약속이 되었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도파민을 좋아한다면 무계획
〈너의 세계로〉, 〈여행을 간 게 아니라, 그림 속에 들어간거다〉
〈기분전환〉, 〈캔버스가 된 여정〉
큰 일을 앞두고 대부분은 계획을 짤 겁니다. A플랜, B플랜, C플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그것이 인생 계획이든 여행 계획이든 사람은 크고 어려운 일도, 즐겁고 기대되는 일도 자주 계획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MBTI라고 불리는 성격유형검사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중 P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통 ‘무 계획형’ 이라고 부릅니다만, 더 정확히는 ‘유연한 사람들’입니다.
“길을 헤맨 적”이 있는 작가는 그걸 그대로 “그림에 빠진” 상황으로 치환합니다. 이쪽이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다는 자세입니다. 계획하지 않고 발걸음을 향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림을 마주합니다. 그 그림은 내 머릿속엔 없었던 형상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그림이 되고 새로운 영감이 됩니다.
계획의 결말은 항상 ‘계획대로 되지 않음’입니다. 무계획의 결말은 ‘예상치 못한 것과의 조우’입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바뀝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것과의 조우는 도파민을 만들어 냅니다. 도파민. 흔히 쾌락의 호르몬이라 불리지만 진짜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측보상오류의 호르몬’입니다. 인간의 예측을 벗어났을 때(대개는 그것이 더 좋은 방향일 때) 이 호르몬이 뿜어져 나옵니다. 도파민을 받은 인간은 ‘적극적으로 나아갑니다’. 반면 스트레스를 받은 인간은 ‘움츠러듭니다’.
그렇다면 계획은 왜 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듭니다. 저는 그저 ‘지금 안정을 찾기 위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적어도 제 삶에서는 그랬으니까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 작가의 작품시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어떤 물감으로도 담지 못할 / 금빛 불꽃”을 찾기 위해라고 말합니다. 예상치 못한 풍경에서 ‘다음으로 나아갈 힘’을 찾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진짜 나를 찾고, 다음으로 나갈 곳을 바라보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해낼 힘을 얻는 것입니다.
한때 큰 계획 없이 3개월간 해외로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계획하고 간 여행은 별로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가 없는 데 반해, 무계획 3개월간의 여행은 아직도 그 순간들이, 자극들이 그대로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큰 틀까지 아예 무계획인 것은 저 역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는 ‘유연함’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순간이 “금빛 불꽃”이 되어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