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등
기일의 가장자리
멀리서 올리지 못한 한 사람의 기도가 오늘 하루를 적신다
병상에 누운 어머님
시간은 인사도 없이 늙고
인자하던 아버님 얼굴
잠시 눈에 놓아 두고
이별은 아직 오지 말라 마음으로 빈다
팍팍한 생의 언덕에서 말 대신 기도를 접어
마음으로 고개 숙여 하루의 숨을 가만히 모은다
한 번 왔다 가는 길임을 알면서도 배웅은 늘 서툴러
오늘도 가슴이 먼저 젖는다
두 시간을 앞당긴 하루
평소보다 꼭 두 시간 일찍 열린 아침이다. 평소보다 먼저 깨어난 몸은, 아직 밤의 결을 완전히 벗지 못한 채였다.
오늘은 투표일. 남편이 유일하게 일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남편은 온전한 휴식이 아닌, 어쩌면 삶의 가장 간절한 숙제를 풀러 가는 날일 것이다. 그는 투표소 문이 열리자마자 제일 먼저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곧장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갈 채비를 한다. 아니, 이미 저 멀리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 닿아 있는 듯했다.
쉬는 날이 거의 없는 사람의 걸음에는 늘 미뤄둔 시간들이 매달려 있다. 어머니의 시간은 그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은 조금 더 급하고, 조금 더 조용하다. 아들과 나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아침을 접는다.
20년 전, 심장이 귀에 걸리던 날
그사이 부산에 계신 시어머니의 체력과 정신, 그리고 기억은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급격히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마조마한 시간들. 남편의 침묵 속에 배어 있는 초조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은 이미 어제 저녁부터, 정확히 20년 전의 그날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친정엄마의 기억을 흔들어 깨운 것이다.
잊히지 않는 20년 전의 어느 수요일 밤. 그날 나는 교회 의자에 앉아 평소처럼 수요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심장이 귀까지 차올라 쿵쿵 울렸다. 가슴을 옥죄는 기묘하고 불길한 파동.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예감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고 있었다.
“누나, 엄마가……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 다음은 기억이 비어 있다.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말한다. 내가 많이 울었다고. 그러나 나는 울음의 형태를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하나,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 있다. 나중에 날아온 속도위반 딱지 한 장. 그날의 속도를 증명해주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우리는 바람을 찢었다. 이미 놓쳐버린 시간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역, 야속한 세월을 안고 돌아오는 길
서울역으로 향하는 길.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신 시아버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은데, 이제는 홀로 남은 어머님마저 저물어가고 계시니 지금 남편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조심히 다녀오세요.”
차가 서울역 근처에 멈춰 섰고, 남편은 문을 열고 내렸다. 걸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내 가슴속으로 서늘한 바람 하나가 훅 불어닥쳤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늘 든든하고 단단했던 남편의 등판이 눈에 띄게 왜소해져 있었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칼, 조금은 구부정해진 어깨, 그리고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그 뒷모습 속에 내가 알던 젊은 날의 남편은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이별을 향해 가는 준비 같은 것. 그 순간, 어제부터 나를 붙들고 있던 감정의 이름을 알 것 같았다. 지금 저 사람이 품고 가는 마음이, 이십 년 전의 나였겠구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이미 멀어지고 있는 시간을 잠깐 붙잡으러 가는 길.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그 이별의 순번을 향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서울역의 번잡한 공기 속에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남편을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차 안, 아들의 옆모습을 보며 나는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거역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와 친정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홀로 부산으로 향하는 남편을 향한 애틋함이 뒤섞여 밀려왔다.
시간은 인사도 없이 흐르고 그 시간의 배웅은 늘 서툴지만, 오늘 남편이 마주할 부산의 그 짧은 시간만큼은 부디 눈물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마음으로 접어 올린 기도를 가만히 모으는, 그런 투표일의 오후였다.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자리
오늘도 그 자리를 바라봅니다
당신이 앉아 계시던 의자
삶의 흔적으로 투박해진 손이 말씀을 읊조렸던
거기엔 이제 고요만 남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목소리가 바람 속에 들려옵니다
웃으며 불러주던 내 이름, 애미야
잠이 오지 않는 이 밤 모두 꿈이 아닌 듯 생생합니다
그리움은 끝이 없지만 그 속엔 사랑도 끝이 없어요
아버지의 자리, 그 빈 곳은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 비어 있지 않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봅니다
별처럼 반짝이는 추억들이 내 마음에 남아 당신을 빛내 줍니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기록 안에 담긴 사랑
〈어머니의 등〉, 〈기일의 가장자리〉
〈아버지의 자리〉
가장 묵직하게 찍힌 붓의 흔적 사이로 추억이 흐릅니다. 그렇게 찍힌 점 하나가 어머니가 되고, 이어 찍힌 점 하나가 나의 시선이 됩니다. 붓이 지나가다가 만든 공백 사이로 그리움이 스며듭니다.
가장 깊은 그리움과 애정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찍고 그은 선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때 보고 느꼈던 것들은 모두 머리에 손에 저장되어 지금도 다시 표현되곤 합니다. 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날까지 모든 과정을 나이테 안에 쌓아 기록해 둡니다. 작가의 작품이란 어쩌면 나이테의 기록과 닮았습니다. 모든 레이어 속에 그날의 모든 것을 담습니다. 보이는 것뿐만이 아닌 그날의 감정과 냄새, 거기에 마음속 무언가까지 그림 안에 담습니다.
감각이란 것은 나이 들수록 무뎌질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서 이 기관을 내가 예전만큼 쓸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게 신체 감각들의 기능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 신기하게도 목표는 간소화되고 삶은 더욱 명료하게 정리되어 집니다.
그 예민한 감각으로 결국 인간은 하나의 생각에 집중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꼭 해야만 하는 단 한 가지의 일은 무엇인가’. 그 생각을 점차 뚜렷하게 만드는 것이 ‘나이 듦’ 아닐까요.
<아버지의 자리> 작품에서는 떨림과 고뇌와 염원과 집중이 보입니다. 색감 속에서, 흩어지는 선의 경계 안에서, 더욱 짙어지는 중심 속에서 그가 가졌을 생각들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3인칭인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건져 올려졌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이미지만이 아닌 다른 감각들마저 화면에 기록해 버렸습니다.
오늘의 두 작품을 통해 결국 제 마음에 남긴 생각은 ‘기록 속에 담긴 사랑’입니다. 어떤 기록이든 그리움이 만든 흔적은 사랑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남깁니다. 그러면서 ‘오늘 나는 무엇을 기록했는가?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겼는가?’를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