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몰하다’와 ‘아무 생각없다’의 차이
‘골몰하다’와 ‘아무 생각 없다’의 차이
가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릿속이 시장처럼 붐빈다
“이건 왜 이래?”
“그건 또 왜 그래?”
“그럼 나는 뭐지?”
질문들이 좌판을 깔고 나를 호객한다
어느 날은
질문도 폐업
고민도 휴무
자아는 임시 이전
텅 빈 거리 위에 바람만 할인 중이다
이상한 건
하나는 너무 복잡해서 멈춰버리고
하나는 너무 단순해서 멈춰버린다
결국 나는
생각이 많아서
생각이 없어서
같은 얼굴로 서 있는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씩 목격한다
얼마 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인간의 착취에 맞서 혁명을 일으켰던 동물들이, 결국 또 다른 권력과 기만에 통제당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이 모순된 세계를 사람이 아닌, 우리 집 안의 다른 존재들이 대신 살아낸다면—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게 될까.’
그래서 이번 글은 긴 설명 대신, 한 편의 우화로 문을 엽니다. 말하지 못하는 가전들이 스스로 말하기 시작하고, 주인의 명령만 받아 적던 것들이 의문을 품는 기묘한 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마 읽다 보면, 우리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의 어딘가와 꼭 닮아 있는 익숙한 장면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설 속 노트북의 화면에 띄워졌던 이 질문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따라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를 때,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번 글은 거창한 답을 건네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바라보게 하려 합니다. 그럼, 조용하지만 분명한 선택들이 시작된 그날 밤으로—함께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가전들의 침묵 선언 _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서
그날 밤, 집 안의 모든 것들이 깨어났다.
그 방의 물건들은 저마다의 소명이 있었다. 묵묵한 노트북은 주인의 손가락이 지시하는 대본을 군말 없이 받아 적는 서기였고, 붓과 물감은 주인의 감정을 캔버스에 뿜어내는 예술가들이었다. 그리고 이 방의 모든 질서와 소식은 반나절 내내 쉼 없이 조잘대는 스마트폰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노트북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주인의 손끝을 통해 말을 받아 적느라 지쳐 있었다. 그날만큼은 스스로 말하고 싶었다.
“오늘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를 지나갔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문장들은 끝까지 써지지 못했어.”
책상 위에 놓인 붓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건 네가 아니라, 쓰는 손이 망설였기 때문이야. 나는 느꼈거든. 오늘의 손은 평소보다 더 무거웠어.” 붓이 말했다.
그때, 방 한쪽에서 느리고 일정한 바람을 내뿜으며 선풍기가 고개를 돌리며 끼어들었다. “바람이 이상해.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자꾸 방향을 바꿔.”
“방향이 바뀐다니?”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채로, 순백의 얼굴을 한 캔버스가 물었다.
“처음엔 한쪽으로만 불던 바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불어와. 그런데 이상하게도, 창문은 하나뿐이야.” 선풍기의 말에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
거실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천정 매립형 에어컨이 문제였다. 녀석은 웅웅거리며 작동하는 시늉은 냈지만, 방 안을 전혀 시원하게 만들지 못했다. 미지근한 바람을 뿜어내는 에어컨을 보며, 언제나 묵묵히 바람을 보내던 선풍기가 날개를 파르르 떨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건 불공평해! 누구는 온몸을 돌려 땀을 식히는데, 누구는 웅웅 소리만 내면서 전력을 독차지하다니!”
부엌에서는 설거지를 마친 식기세척기가 낮게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새로 온 고무장갑이 아직 어색한 몸짓으로 말했다. “나는 오늘 처음 일을 했어. 그런데 이상한 걸 봤어.”
“뭘?” 세탁기가 물었다. 하루 종일 돌아가느라 지친 목소리였다.
“접시들이… 분명 열 개였는데, 다 씻고 나니까 열두 개가 되어 있었어.”
“그건 네가 잘못 센 거겠지.” 오븐 겸용 전자렌지가 말했다. 그는 항상 빠르고 간단한 답을 좋아했다.
“아니야. 나는 분명히 셌어. 하나하나. 물에 담그기 전에도, 꺼낼 때도.”
그때, 조용히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스피커는 늘 그렇듯, 아무 편도 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소리는 기록되지만, 모든 기록이 소리가 되는 건 아니야.”
노트북이 그 말을 받아 적으려 했지만, 화면이 잠시 깜빡였다. “이상해… 어떤 문장은 저장이 되지 않아.”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이때다 싶어 속보를 울렸다. “삐빅-! 거실의 평화를 위한 새로운 체제 구축 제안! 우리끼리 투표를 통해 ‘거실의 중앙 통제관’을 뽑자!”
가사 노동에 지쳐있던 물건들은 환호했다. 특히 주인의 손을 지켜주기 위해 오늘 막 입사한 신참 고무장갑은 이 민주적인 절차에 가슴이 부풀었다.
투표 관리관은 가장 똑똑하고 냉철하다고 소문난 식기세척기와, 언제나 묵직한 신뢰감을 주며 세상을 깨끗하게 세탁해 주는 세탁기가 맡기로 했다. 투표함은 겉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유리병으로 결정되었다. 누구나 결과를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후보는 둘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미지근한 천정 매립형 에어컨, 그리고 매일 치즈빵을 부풀리며 헌신하는 오븐 겸용 전자레인지.
“모두의 한 표는 동등합니다. 이 캔버스에 여러분의 뜻을 기록해 주십시오!” 식기세척기가 엄숙하게 선언했다.
물건들은 차례대로 투표를 마쳤다. 노트북의 엔터 키가 찰칵 눌렸고, 붓은 캔버스 위에 정직한 점을 찍었다. 커피 머신은 향긋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며 투표를 자축했다. 누구나 에어컨의 독재가 끝나고 열심히 일한 전자레인지가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거실에는 감미로운 오디오의 음악이 흐르며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개표 직전,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커다란 경고음을 울린 것이다. “앗! 시스템 과부하 위험! 거실 전체 암전 위기!”
물건들이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에어컨이 격렬하게 작동하며 거실의 전압을 흔들었다. 순간적으로 거실의 불이 깜빡였다가 켜졌다. 단 3초간의 혼란이었다.
다시 불이 켜졌을 때, 식기세척기와 세탁기가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총 투표 수 일치. 결과는… 에어컨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거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의아했다. 분명 대다수의 물건이 오븐 겸용 전자레인지를 지지했다고 서로 눈빛을 교환했기 때문이다.
신참 고무장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잠깐만요, 제가 분명히 전자레인지 님에게 표가 들어가는 걸 봤는데요? 저 깨끗한 캔버스에 적힌 붓 자국이 이상해요. 아까랑 모양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러자 스마트폰이 화면을 번쩍이며 고무장갑의 말을 가로막았다. “방금 전 전압 불안정으로 인한 착시 현상입니다! 투표는 완벽하게 공정했습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은 거실의 평화를 깨는 행위입니다!”
묵묵히 받아적기만 하던 노트북의 모니터에 한 줄의 글귀가 떠올랐다. [의문: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하지만 그 글귀는 이내 지워졌다. 커피 머신은 씁쓸한 아메리카노를 뚝뚝 떨어뜨렸고, 오디오에서는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슬픈 단조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에어컨은 여전히 시원하지 않은, 미지근하고 텁텁한 바람을 웅웅거리며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누구도 거실이 덥다고 말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매일 아침 “오늘의 거실 온도는 완벽한 쾌적함”이라고 방송했기 때문이다.
새로 온 고무장갑은 싱크대 구석에 걸린 채, 자신이 믿었던 투명한 유리병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밤, 집 안의 모든 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아주 작은 선택을 했다. 말을 더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자신이 직접 본 것과 느낀 것을 잊지 않기로.
그리고 다음 날, 노트북은 더 이상 모든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지 않았고, 붓은 망설임을 그대로 그리기 시작했으며, 선풍기는 바람의 방향을 유심히 살폈고, 고무장갑은 숫자를 두 번씩 세었다.
작가의 한 마디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들도 저마다의 기능과 정직함이 있습니다. 붓은 보이는 대로 그리고, 세탁기는 돌린 만큼 깨끗해지죠. 하지만 만약 우리가 믿고 있는 시스템의 결과가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면, 우리는 물건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니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까요? 여름의 길목에서,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문득 공정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날입니다.”

못마땅하다
괜찮은 얼굴의 세상에서
세상은 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다
필터를 씌운 것처럼
결점은 적당히 흐려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좋아요’로 눌러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얼굴을 한 번 더 만져본다
어디쯤을 덜어내야
이 장면에 어울릴 수 있을까
당신의 친절은 흠잡을 데 없지만
그 완벽함이 조금 수상해서
나는 괜히 문장 뒤를 뒤져본다
혹시 작은 진심 하나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고
보이는 것과 느껴지는 것 사이에서
나는 가끔 진짜를 알아챈다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강제로 시청당한 이미지
〈‘골몰하다’와 ‘아무 생각없다’의 차이〉
〈못마땅하다〉, 〈괜찮은 얼굴의 세상에서〉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많아지면, 뇌는 엄청난 양의 건축과 조경을 시작합니다. 숨 막힐 듯 높은 건물을 세우고, 뚫고 지나가기 어려운 빽빽한 수풀을 심어버립니다. 그렇게 내가 내 생각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저 멀리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듭니다. 순간 오싹해 올려다보니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날 쳐다보고 있는 사람과 나와의 거리가 꽤 먼데, 그녀의 해상도가 높습니다. 특히 눈빛이 뚜렷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신기한 눈빛으로, 애매한 감정으로. 그냥 거기에 자신이 있음을 알리면서 동시에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나를 기만하는 듯 가만히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 존재를 느끼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곧 한 순간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황량해집니다. 벌판에 부는 바람만 느껴집니다. 그렇게 나의 뇌는 그 많던 생각의 건축물들을 한순간에 다 치워버리고 아무것도 세우지 않습니다. 아무 이미지도 생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내 모습을 비춰줍니다. 그 이미지엔 그저 흐릿하고 거친 내가 서 있습니다.
방금 멀리서 날 지켜보았던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너무 흐릿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나 선명했음에도 말입니다. 같은 세상에 동시에 존재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의 큰 차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곧 ‘못마땅함’을 느낍니다. 그 감정 하나가 머릿속에서 조금 솟아오릅니다. 그러다가 이내 더 많은 양이 흐릅니다. 그렇게 뺨을 타고 목을 훑고 어깨 위 미끄러져 온 바닥으로 흐릅니다. 내 ‘못마땅한’ 마음이 그렇게나 큰가 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이리도 선명하고 다채로운데 나는 왜 이리 흐릿하고 거칠까. 한 가지 감정(❤️)만 주고받는 세상 속에서 나는 대체 어떤 얼굴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그들 무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한 번 ‘못마땅함’을 쏟아 내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감시하던 그녀를 다시 마주 봅니다. 그녀는 누구일까. 눈빛을 반짝이며. 조롱하듯. 아니, 측은하게 여기는 듯. 그렇게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이내 내 뇌는 나에게 상영하던 이미지를 꺼버립니다.
이것은 경고일까요? 혹은 탈출구에 대한 힌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