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뜨거운 여름
혀 위의 혁명, ‘괜찮아’라는 맛의 번역학
태양이 붉은 혀를 길게 내밀고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헐떡이는 날
나는 그 뜨거운 혀 위에
가장 서늘하고 부드러운 반성문 한 장을 올려둔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불쾌지수는 순식간에 무장해제
지금 내가 씹고 있는 것은
바닐라도, 초코도 아닌 ‘괜찮아’라는 맛
삶이 조금 흘러내려도, 마음은 기운을 내는
이 기묘한 물리 법칙
뚝,
손등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낙원
그 눈물 같은 달콤함을 핥아 올리는 순간
나를 괴롭히던 이 여름을 기꺼이 ‘용서’한다
아이스크림은 입속에서 피어나는 차가운 불꽃
온화하게 붕괴시키는 가장 달콤한 ‘혁명’
그러니 나는 오늘도 냉동실 문을 연다
세상을 향해 조금 더 관대해지기 위해
내 안의 사랑을 1°C 더 ‘급속 냉동’해두기 위해
여름의 온도, 혀끝의 기억
유난히 볕이 따갑던 오늘, 그동안의 유혹을 뒤로한 채 아이스크림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정말 거의 일 년 만에 냉동고의 한 칸을 아이스크림으로 넉넉히 채웠다.
냉동고 속에 가지런히 눕혀 두고, 하루에 하나씩 꺼내 먹을 생각을 하니 마치 작은 사치를 저축해 두는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아이스크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냉동고의 냉기 사이로 아스라이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나는 까만 단발머리의 국민학생인 ‘나’를 만난다.
그 시절 우리는 그것을 ‘아이스크림’이라는 세련된 외래어 대신, 어쩐지 더 찰지게 감기는 ‘아이스께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지금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아니라, 그저 꽁꽁 언 얼음에 새콤하고 달콤한 색소 물을 주입해 모양만 흉내 낸 거칠고 투박한 얼음과자였다.
그때는 그 투박한 얼음 한 조각을 만나는 일조차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언제나 기다림 끝에만 주어졌다. “아이스께끼~” 우렁찬 외침과 함께 어깨에 커다란 나무 상자를 멘 아저씨가 동네 골목귀퉁이를 돌아 들어서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축제였다. 언제 올지 몰라 더 애틋했고, 어쩌다 손에 쥐어지면 녹아내리는 국물이 손목을 타고 흐르는 것조차 아까워 허겁지겁 혀를 대던, 결핍이 만든 최고의 별미였다.
지금은 어떤가. 편의점의 유리문만 열면, 사계절 내내 세상의 거의 모든 맛이 정렬되어 있다. 딸기와 바닐라, 초콜릿과 녹차, 이름조차 낯선 이국의 풍미까지 우리를 기다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얼어붙은 시간 속을 걸어온 달콤함의 역사
문득 아이스크림의 역사가 궁금했다. 인터넷 지식인을 비롯, 이곳저곳에서 아이스크림의 역사를 들춰보았다.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 차가운 마법은 사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인류의 사치품이었다.
아이스크림의 시초는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는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으로 노예들을 보내 눈을 길어오게 했다. 그리고 그 눈에 꿀과 과일 즙을 섞어 먹었다. 그러니까 최초의 아이스크림은 눈물과 노동으로 버무려진, 오직 ‘절대 권력자’만을 위한 얼음 과자였던 셈이다. 그 사치의 시간이 흘러, 오늘 우리의 냉동고 속으로 들어왔다. 한때는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이 이제는 일상의 위로가 된 것이다.
이후 16세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프랑스 왕실로 시집을 가면서 이 비법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눈에 소금을 섞으면 온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흡열 반응의 원리가 발견되면서 비로소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유제품 아이스크림이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아이스크림 콘’의 탄생에는 아주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장, 아이스크림 스탠드에 손님이 너무 몰려 그만 아이스크림을 담아줄 접시가 바닥나고 말았다. 그때 바로 옆 진열대에서 와플을 구워 팔던 시리아 출신의 제과업자가 기지를 발휘했다. 얇고 바삭한 와플을 고깔 모양으로 둥글게 말아 아이스크림을 얹어준 것이다. 위기가 인류 최고의 디저트 혁명으로 뒤바뀐, 그야말로 ‘달콤한 연대’의 순간이었다.
작아진 계절, 그러나 여전한 설렘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온갖 이국적인 맛의 아이스크림이 문 앞까지 배달되는 풍요의 시대이다. 원할 때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함이 밀려온다.
다시 마트로 돌아오면, 계산대 앞에서 마주한 현실은 조금 아찔하다. 치솟은 물가 탓인지 몸값은 귀해졌고, 어쩐지 손에 쥐어진 내용물은 눈에 띄게 수줍고 작아졌다. 게다가 이제는 ‘건강’이라는 엄격한 파수꾼을 세워두고 이 달콤한 유혹을 멀리하라 경고한다. 풍요 속의 거리두기—마음껏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은 자꾸만 가벼운 것의 무게를 무겁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달콤함이 마음의 가장 단단한 곳을 잠시 풀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마다 이 작은 막대 위에 얹힌 시간들을 함께 베어 문다. 가난했던 시절의 기다림, 풍요로운 시대의 절제,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나의 삶.
오늘 나는 냉동고 문을 열고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틈 사이로 하나를 꺼낸다. 포장을 벗기는 순간,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여름이 시작된다.
어쩌면 아이스크림의 본질은 ‘찰나’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뭇거리면 이내 녹아 사라져 버리는 그 덧없음이,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의 미각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작은 차가움을 입안에 머금으며 조용히 감사한다. 녹아 없어질 것들 덕분에 우리가 더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구독자 여러분의 냉동고에는 지금 어떤 계절이 얼어붙어 있나요?
유난히 지치고 더운 오늘 밤, 나를 위해 작은 얼음 과자 하나를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다정했던 그 시절의 소년, 소녀가 냉동고 문을 열고 당신에게 달콤한 안부를 건넬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달콤하고 행복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름생각
빙수(氷水)
사각사각 서걱서걱
차가운 언어의 파편들이
혀 위에서 미끄럼틀을 탄다
얼어붙어 있던 불쾌지수가 사르르
달콤한 온도로 급상승한다
녹는 것은 너를 향해 뾰족했던
내 마음의 모서리들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Cool하고 달콤한 사람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이당치열(以糖治熱), 불편함은 적인가 동료인가
〈뜨거운 여름〉, 〈혀 위의 혁명, ‘괜찮아’라는 맛의 번역학〉
〈여름 생각〉, 〈빙수(氷水)〉
이열치열을 하기엔 이제 지구는 너무 뜨겁습니다. 지구의 건강을 지키려다 제 성질 때문에 먼저 병들 누울 지경입니다. 이럴 땐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입에 아이스크림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함께 넣습니다.
오늘 작가의 두 작품은 여름에서 출발한 걸까요? 아니면 달콤함과 시원함에서 출발한 걸까요? 아닙니다. 둘 다 ‘불쾌함’에서 출발했습니다. 불쾌함을 내쫓고자 선택한 것이 ‘당’과 ‘빙’입니다. 불쾌지수만 내려준다면야 포도당이 지방으로 변신하는 일쯤은 양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 열이라는 것이 참 많은 것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더위를 이겨내는 온갖 방법을 인간이 만들어 냈으니까요. 아니, 더 근원적으로 내려가면 인간의 불편함이 모든 것을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불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발전하고, 발명하고, 때로는 정복하는 걸 겁니다.
반대로 불편함이 없어진 상황은 어떨까요. 더 이상 발전 없이 멈춰버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것도 불편하지 않은 상황, 아무것도 더 원하지 않는 상태. 사람들은 항상 유토피아니, 성공이니, 완벽함이니 그런 것들을 쫓지만, 아무튼 그런 상태에 도달하면 오히려 아무 의욕이 없어진 이상한 상태를 만들지도 모른단 상상을 하게 됩니다.
때론 불편함이 삶의 연료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두 작품 사이를 눈이 오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