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에 툭, 하고
가슴에 툭, 하고
새로 지은 동네 도서관
은은한 책 냄새 사이로
내가 아끼는 시인의 숨결을 찾았네
품에 꼭 안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의 흙길 위로
작은 풀꽃들이 툭, 툭, 피어나더니
어느새 내 가슴에
싱그러운 초록 향기로 가득 찼네
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책장을 넘기다
내 가슴에 툭, 하고 깊이 꽂힌 문장 하나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너는 한 사람…’
그냥, 그냥 이 한 줄이 위로가 되어서
그냥, 그냥 모든 시가 내 얘기 같아서
나를 향한 이 다정한 숨결을
내일 독서 모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마음에 피어난 이 초록빛 향기를
‘오직 너를 위한 선물’이라며
한 움큼씩 나누어 주어야지
시(詩)를 빌리는 아침, 시가 되는 인생
단골 공구 대여점 같던 우리 동네 동사무소가 얼마 전 새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공구를 빌리러 갔던 곳이었는데, 새 건물에는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이 새로 생겼다.
그동안은 다리 건너 이웃 동네까지 책을 빌리러 갔었다. 운동도 하고 책도 빌리고,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건네면서 긍정 에너지를 주입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집 근처에서 책을 빌릴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마침 근처 헬스장으로 향하는 아들의 발걸음을 따라 나도 길을 나섰다. 근육을 키우는 아들과 문장을 키우려는 내가 같은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 뿌듯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삶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새로 지은 도서관의 공기는 아직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종이 향으로 가득했다. 이번 달 독서 모임에서 나눌 나태주 시인의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찾아 들었다. 마침내 시집을 빌려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이미 어느 봄날의 풀꽃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익숙한 문장이었다. 가만 보니 평소에 내가 자주 입 밖으로 꺼내던 말이었다. 우리는 그저 같은 진실을 다른 시간에 발견한 것뿐이었다.
적어도 나에게 시인의 시는 늘 그랬다. 잘 구운 식빵처럼 따뜻하고, 오래 입은 셔츠처럼 편안하며, 별것 아닌 손길로 툭 얹어주는 위로 속에서 묘한 힘과 용기를 준다.
어찌 나만 그를 좋아하랴. 세상의 모든 서툰 이들이 그의 문장 아래서 쉼을 얻지 않았을까.
시집의 서두를 열자마자 시인은 대뜸 묵직한 고백을 건넸다. 참 멀리 왔다고, 하지만 굳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다가 잠시 멈췄다. 내 마음은 그와 조금 달랐다. 나는 자주 돌아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실수했던 날들, 어설펐던 선택들, 붙잡지 못했던 순간들. 마치 연필로 쓴 인생이라면, 지우개로 몇 번쯤 고쳐 쓰고 싶었다.
시인의 마흔 아홉권째 시집을 들고 내가 뱉은 말은, ‘아, 이 어른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연소하며 살았구나.’
그러나 행간을 더 깊이 읽어 내려가다 보니, 놀랍게도 나와 대 시인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인생의 해상도’가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시인은 고백했다. “아직도 내 두 손에 시가 쥐어져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내 투박한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거장은 평생을 쥐고 온 시를 여전히 다행스럽게 쥐고 있고, 나는 조금 늦게 가방을 메고 들어온 늦깎이 학생처럼 이제야 겨우 시를 손에 쥐려고 애쓰고 있었다.
출발선과 속도는 달랐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의 손바닥 안에는 ‘시(詩)’라는 같은 온도의 씨앗이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거장의 문장에 내 인생을 슬쩍 빗대어 보는 이 발칙한 욕심이 그리 밉지만은 않았다.
오전에 시작된 도서관 나들이는 이렇게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인 사색으로 이어졌다. 소설처럼 파란만장한 기승전결이 있는 삶은 아닐지라도, 내 인생의 마무리는 조금 더 시적인 여백을 닮았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내가 쉼표 없이 산문처럼 달려왔다면, 인생의 후반전은 굳이 단어를 많이 쓰지 않아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처럼 살고 싶다. 비록 나태주 시인처럼 교과서에 실리는 거장은 될 수 없을지라도, 내 소박한 소망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나 또한 그 누군가의 인생에 따스한 위로가 되는 ‘한 줄의 시’이고 싶다. 새로 발급받은 도서관 회원증은, 어쩌면 남은 생을 시처럼 아름답게 살아보겠다는 나만의 은밀한 입학통지서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그저 손에 쥔 시를 꼭 쥐고 한 걸음씩 다정하게 걸어가 볼 일이다.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시일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이 왔을 때, 나는 어떤 문장으로 남고 싶을까.
“그 사람, 참 시처럼 살았지”라는 한 줄이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인생은 이미 충분히—한 편의 시이니까.

독서 시간
은밀한 입학통지서
잉크 향 가득한 새 도서관에서
빳빳한 회원증 하나를 발급받았습니다
남은 생을 시처럼 살아보겠다는
나만의 은밀한 입학통지서입니다
평생을 시를 쥐고 살아온 거장과
출발선도, 걸어온 속도도 다르지만
내려다본 내 투박한 손바닥에도
시라는 씨앗이 쥐어져 있습니다
여백을 닮은 시처럼 살고 싶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겠습니다
손에 쥔 이 작은 온기를 꼭 쥐고
하루를 다정하게 걸어가면 그뿐이지요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날
누군가 내 삶을 한 줄로 요약해 준다면
그저 이 말이면 충분하겠습니다
“그 사람, 참 시처럼 살았지.”
타자의 시선이 작품에 머물 때
– 에디터의 작품 감상 –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학교
〈가슴에 툭, 하고〉
〈독서 시간〉, 〈은밀한 입학통지서〉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를 자주 듣고 접하다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의 고군분투하며 성취했던 삶의 이야기 속 빠지지 않는 두 가지. 바로 독서와 글쓰기입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어디를 가나 손잡고 함께 따라옵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인풋(input : 입력)과 아웃풋(output : 출력)이 우리의 뇌를 엄청나게 발전시킨다고 합니다. 하버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글쓰기 수업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성공한 사업가들도 사업 역량 중 독서와 글쓰기를 항상 이야기합니다. 더군다나 뇌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가 치매 예방까지 해준다고 하니, 어찌 보면 그냥 평생 같이 가야 할 동반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진 독서와 글쓰기. 이 두 친구와 누구나 쉽게 친해질 수 있게 우리 주변엔 도서관이 참 많습니다. 학교는 시험을 치고, 자격을 얻어야 다닐 수 있지만 도서관은 그저 열려있습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학교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들도 과목별로 있고, 또 시대별로 위대한 이들의 생각까지 엿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감사함과 즐거움이 오늘의 두 작품을 스쳐 저에게 느껴졌습니다. ‘총총총총’ 기쁜 발걸음이 보이기도 하고 거대한 숲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늑함과 따뜻함, 그리고 전율과 설렘.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감정들이 그림에서 보입니다. 글과는 다른 구조로 읽히는 서사입니다.
두 작품을 보다 보니 문득 아직 읽지 못한 책을 집어 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옆에 두고 보고 싶어졌습니다.